김정필 r32 RAW 2022-06-22 11:09:13에 w2에서 r32판 포크됨[include(틀:천하장사)] ---- ||<-2> [[파일:씨름 김정필.jpg|width=100%]] || || '''{{{#white 이름}}}''' || 김정필 || || '''{{{#white 국적}}}''' || [[대한민국]][[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25]] || || '''{{{#white 출생}}}''' || [[1973년]], [[대구광역시]] || || '''{{{#white 학력}}}''' || [[영신중학교(대구)|영신중학교]][br][[영신고등학교(대구)|영신고등학교]][br][[대구보건대학교]] 헬스매니지먼트과 || || '''{{{#white 종목}}}''' || [[씨름]] || || '''{{{#white 소속}}}''' || 조흥금고 씨름단(1992~1997)[br]현대 코끼리 씨름단(1999~2003) || || '''{{{#white 신체}}}''' || 186cm, 156kg ||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前 [[씨름]] 선수다. == 선수 경력 == 1991년 12월 민속씨름 최초로 1억 원이 넘는 계약금을 받고 조흥금고 씨름단에 입단하여, 데뷔 첫해인 1992년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강호동/씨름|강호동]][* 강호동과는 4개 대회에 동시 출전하긴 했으나, 서로 맞붙은 적은 단 1판도 없다.]의 급작스러운 은퇴 직후 약 1년 여의 짧은 기간 동안 모래판을 평정했다. 1992년 9월에 열린 제26회 천하장사 대회를 시작으로, 1993년 3월에 치러진 제27회 천하장사 대회까지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3032200289113006&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3-03-22&officeId=00028&pageNo=13&printNo=1509&publishType=00010|6번 연속 천하장사에 등극]][* 당시에는 1년에 3번 열린 정식 천하장사 대회 뿐 아니라, 체급을 불문하고 모든 체급의 선수가 참가하는 통합장사 성격의 대회를 일컬어 '천하장사'라고 칭했다.]하며 독주 체제를 구축한 적도 있다. 2003년 3월 은퇴할 때까지 [[씨름/체급#s-2|천하장사]] 2회(제26대 & 27대), 천하대장사(1992), 지역장사 1회, 백두장사 6회 등을 포함하여 공식 대회에서 총 14번의 장사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통산 전적은 490경기 316승 174패([[http://www.sportsq.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434|승률 64.5%]])를 기록했다. '슈퍼두꺼비' 라는 별명처럼 160kg에 육박하는 무거운 몸집으로 버티다가, 상대를 눌러서 주저앉히거나 잡채기로 마무리 짓는 단조로운 방식으로 승리를 따냈다. 들배지기조차 거의 사용하지 않았을 정도로 기술 씨름과는 거리가 멀었고, 1년 선배인 '람바다' [[박광덕]]과 더불어 씨름 선수 대형화의 시초이자 씨름을 지루하고 재미없게 만든 장본인으로 비판받는다.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던 데뷔 초창기와 달리, '모래판의 황태자' [[이태현(씨름)|이태현]]을 필두로 자신보다 신장이 더 크거나 힘이 더 센 후배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급격히 쇠퇴하고 말았다. [각주] [[분류:씨름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73년 출생]][[분류:1992년 데뷔]][[분류:천하장사]]보낼 RAW[include(틀:천하장사)] ---- ||<-2> [[파일:씨름 김정필.jpg|width=100%]] || || '''{{{#white 이름}}}''' || 김정필 || || '''{{{#white 국적}}}''' || [[대한민국]][[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25]] || || '''{{{#white 출생}}}''' || [[1973년]], [[대구광역시]] || || '''{{{#white 학력}}}''' || [[영신중학교(대구)|영신중학교]][br][[영신고등학교(대구)|영신고등학교]][br][[대구보건대학교]] 헬스매니지먼트과 || || '''{{{#white 종목}}}''' || [[씨름]] || || '''{{{#white 소속}}}''' || 조흥금고 씨름단(1992~1997)[br]현대 코끼리 씨름단(1999~2003) || || '''{{{#white 신체}}}''' || 186cm, 156kg ||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前 [[씨름]] 선수다. == 선수 경력 == 1991년 12월 민속씨름 최초로 1억 원이 넘는 계약금을 받고 조흥금고 씨름단에 입단하여, 데뷔 첫해인 1992년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강호동/씨름|강호동]][* 강호동과는 4개 대회에 동시 출전하긴 했으나, 서로 맞붙은 적은 단 1판도 없다.]의 급작스러운 은퇴 직후 약 1년 여의 짧은 기간 동안 모래판을 평정했다. 1992년 9월에 열린 제26회 천하장사 대회를 시작으로, 1993년 3월에 치러진 제27회 천하장사 대회까지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3032200289113006&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3-03-22&officeId=00028&pageNo=13&printNo=1509&publishType=00010|6번 연속 천하장사에 등극]][* 당시에는 1년에 3번 열린 정식 천하장사 대회 뿐 아니라, 체급을 불문하고 모든 체급의 선수가 참가하는 통합장사 성격의 대회를 일컬어 '천하장사'라고 칭했다.]하며 독주 체제를 구축한 적도 있다. 2003년 3월 은퇴할 때까지 [[씨름/체급#s-2|천하장사]] 2회(제26대 & 27대), 천하대장사(1992), 지역장사 1회, 백두장사 6회 등을 포함하여 공식 대회에서 총 14번의 장사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통산 전적은 490경기 316승 174패([[http://www.sportsq.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434|승률 64.5%]])를 기록했다. '슈퍼두꺼비' 라는 별명처럼 160kg에 육박하는 무거운 몸집으로 버티다가, 상대를 눌러서 주저앉히거나 잡채기로 마무리 짓는 단조로운 방식으로 승리를 따냈다. 들배지기조차 거의 사용하지 않았을 정도로 기술 씨름과는 거리가 멀었고, 1년 선배인 '람바다' [[박광덕]]과 더불어 씨름 선수 대형화의 시초이자 씨름을 지루하고 재미없게 만든 장본인으로 비판받는다.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던 데뷔 초창기와 달리, '모래판의 황태자' [[이태현(씨름)|이태현]]을 필두로 자신보다 신장이 더 크거나 힘이 더 센 후배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급격히 쇠퇴하고 말았다. [각주] [[분류:씨름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73년 출생]][[분류:1992년 데뷔]][[분류:천하장사]] [include(틀:포크됨, title=김정필, version=32)]더위키에 나무위키판으로 포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