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스 하빌랜드 캐리어 r94 RAW 2022-06-22 10:36:48에 w2에서 r94판 포크됨[include(틀:타임지 선정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건설자들 & 거인들))] [include(틀:라이프지 선정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인)] ||<-2> '''{{{+1 윌리스 하빌랜드 캐리어}}}[br]Willis Haviland Carrier''' || ||<-2> {{{#!wiki style="margin:-6px -10px" [[파일:Willis_Carrier_1915.jpg|width=100%]]}}} || ||<|2> '''출생''' ||[[1876년]] [[11월 26일]]|| ||[[미국]] [[뉴욕 주]] 앵골라 || ||<|2> '''사망''' ||[[1950년]] [[10월 7일]] (향년 73세)|| ||[[미국]] [[뉴욕 주]] [[뉴욕 시]]||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미국)] || || '''학력''' ||[[코넬 대학교]] {{{-2 ([[기계공학]] / [[학사]])}}}|| || '''직업''' ||[[발명가]], [[사업가]]|| || '''업적''' ||최초의 전기식 [[에어컨]] 발명|| [목차] [clearfix] == 개요 == [[에어컨]]의 기초가 되는 공기 조절 장치의 [[발명가]]이자 본인의 이름을 딴 회사인 [[캐리어(기업)|캐리어]] 사의 창업주이다. == 생애 == 1876년 11월 26일, [[미국]] [[뉴욕주]] 앵골라에서 태어나 1901년 [[코넬 대학교]]에서 기계공학 학사과정을 졸업하였으며 Buffalo Forge Co.라는 회사에 입사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회사의 실험개발팀장이 되었다. 1902년, 캐리어 박사가 인쇄물의 형태를 변형시키는 습도와 열기를 제거하고자 연구하던 중, 세계 최초로 에어컨의 원리를 발명, 1906년에는 ‘공기 조절 장치(The Apparatus for Treating Air)’로 특허를 획득하며, 공조 업계에서 인정받기 시작, ‘난방’을 위한 장치 개발에도 새로운 도전을 하기 시작하였으며, 1907년에는 캐리어 박사의 시스템을 최초로 일본 요코하마의 비단 공장으로 수출하였으며, 1915년에는 6명의 친구들과 32,600달러를 들여 캐리어 공학 회사(Carrier Engineering Company)를 설립하였는데 이는 현재 우리가 아는 [[캐리어(기업)|캐리어]]의 모체가 되었다. 1922년에는 세계 최초로 [[뉴저지주]] [[뉴어크]]에서 터보 냉동기를 발명, 소개했다. 터보 냉동기는 넓은 공간의 공기를 효율적으로 조절하는 첫 번째 실용적인 제품이었으며, 1924년에는 디트로이트 허드슨 백화점에 터보 냉동기를 설치하여 냉방 분야에 데뷔하였으며, 백화점 세일에 몰려든 고객들이 쇼핑을 쾌적하게 즐기게 됨에 따라 캐리어의 연구는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다. 이듬해인 1925년에는 각 극장에 에어컨이 설치됨으로써 여름철 극장 산업의 붐이 일고 에어컨 시스템이 매력적인 장치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1928년에는 [[세계 대공황]]으로 인해 모든 산업이 침체에 빠져 에어컨 산업에 있어서도 좌절을 맛보던 시기가 있었지만, 지속적인 연구 개발로 20년대 말부터 소형 에어컨이 출시되기 시작했다. 1939년에는 높은 건물들을 위한 에어컨 시스템을 발명하고, 세계 박람회에 캐리어의 공조 시스템이 전시되는 등 활발한 공기 조화 산업의 미래를 제시하였다. 1950년 캐리어 박사는 73세의 나이로 뉴욕 주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출처: 캐리어에어컨 공식 홈페이지 [[http://www.carrier.co.kr/about/story/history.asp|캐리어 역사란]] == 업적 == 한국의 네티즌들 사이에선 '''인류의 진정한 구원자'''라는 진반농반의 찬사를 들으며 커뮤니티에 여름만 되면 항상 찬양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이런 한국의 찬양여론을 캐리어 코리아에서도 잘 알고 있어서 자사 홍보에도 잘 써먹고 있다.[[https://m.blog.naver.com/autechgroup/221539932351|#]]] 물론 한국 뿐 아니라 다른나라들도 마찬가지다. '더위'를 물리쳐준 에어컨의 발명가라는 사실이 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인데, 캐리어의 업적은 에어컨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는 공기 조화 장치, 즉 공조장치를 발명한 것인데 이 시스템은 더위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인간의 생활과 세계의 역사를 그야말로 획기적으로, 영원히 바꿔버린 발명품'''이다. '공조 장치'가 가져온 혁명적인 변화는 다음과 같다. * 공기 조화 장치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밀집한 공간에도 공기화 장치를 통해 실내 온도와 대기의 질을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대형 건물과 시설들이 생겨났다. [[마천루]], [[쇼핑몰]], [[멀티플렉스]], 각종 복합 시설 등이 생겨날 수 있게된 것. 위 생애 문단에서 볼 수 있듯이 캐리어가 공조 장치를 발명한 이후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한 곳이 바로 극장이었다. 에어컨이 없었다면 한여름 찌는듯한 실내 열기를 몇 시간씩 견디면서 영화를 볼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공조 장치가 없으면 '환기'를 시켜야 하므로 개폐가 가능한 창문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그나마도 효율이 장치에 비해 좋은건 아니다. 따라서 대형 건축물을 설계하는데 있어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자리잡았다. * 쾌적한 지하철, 여객기, 철도 환경을 조성하면서 인류의 교통 물류 인프라에 크나큰 기여를 했다. 당연하겠지만 공조 장치가 없다면 다수의 승객이 탑승하는 여객기는 비행 자체가 불가능하다. 상공의 위험한 대기 환경을 생각하면 개폐가 가능한 창문을 단다는건 어불성설. 즉 공조 장치가 발명되면서 '항공여객'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제시될 수 있었던 것이다. * 더위에 취약한 것은 사람만이 아니라 전자기기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수많은 서버들이 모여 있는 [[데이터 센터]]는 에어컨 덕분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에어컨이 없었다면 거대 IT기업이 등장할 수 없었다. 지금도 구글 데이터 센터에는 초당 수십 메가의 유튜브 동영상 데이터가 축적되고 있고 전세계의 수많은 디지털 데이터들이 데이터 센터에 저장되어있고 수억개가 넘는 서버들이 열심히 돌아가고 있다. 그 막대한 데이터를 보관하기 위해 돌아가는 전자장치가 내뿜는 열을 '실내'에서 컨트롤할 수 있는 장치가 바로 공조 장치다. 다시 말해 공조 장치가 없다면 그냥 IT혁명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거나 일어나더라도 매우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갔을 것이다. 실내에 설치할 수 있는 서버의 숫자가 크게 제약되므로 비용이 크게 올랐을 것이기 때문. * 공조 장치는 인류의 냉장, 냉동 기술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켜 식품 및 약품을 그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 보관할 수 있게 되었으며 냉장/냉동 컨테이너가 제작되어 전 세계로 식품이 신선한 상태로 수출될 수 있었다. 이는 '''전 세계 식문화의 변화'''를 이끌어 냈다. 간단히 말해서, 언제 어디서나 신선한 육류와 과일, 채소, 어패류, 곡물 등을 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바다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내륙지역에서 생선 요리를 먹거나, 한겨울에 여름 과일을 먹는 것, 대도시에서 고기를 사먹는 것, 멀리 떨어진 지구 반대편에서 전세계에서 생산되어온 특산품을 먹는 것 등은 단순히 농업기술의 발달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이 바로 공조 장치다. 채소와 육류, 과일 등을 운반하는 대형 선박이나 철도, 트럭 등에 냉장 장치가 없다고 생각해보자. * 의학계에도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냉장과 냉동 기술은 '''백신 및 치료제, 기증 장기 저장 기술'''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공조 장치가 없었다면 바이러스나 암을 비롯한 질병과의 싸움, 그리고 '''현재진행중인 [[코로나19]]와의 전쟁도 불가능하거나 엄청나게 힘들었을 것이다'''. 일례로, [[코미나티주|화이자에서 개발한 백신]]의 경우 보관하려면 '''영하 70도'''의 온도가 필요하다. 공조 장치로 인한 냉동기술의 발달이 없었으면 우리는 백신 연구소를 남극에 세우고 백신 접종을 위해 남극까지 와야 하는 대참사가 벌어졌을 것이다. * 한술 더 떠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는 에어컨이 없었다면 [[싱가포르]]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 싱가포르는 상당히 덥고 습하고 비가 주구장창 내리는 [[열대우림기후]]라[* 실제로 싱가포르는 매우 덥고 습할뿐 아니라 설상가상으로 하루에도 두세 번씩 간헐적으로 [[스콜]]이 내리는 날이 드물지 않다. 이런 식인데 냉방 및 제습기능을 수행하는 공조장치가 없었다면 싱가포르가 세계적인 금융 허브이자 오피스 밀집 지구가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선진국으로 발전하기 불리한 기후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공조 장치 덕분에 더위를 극복하고 손꼽히는 대도시를 건설할 수 있었다. 열대 지방에 대도시가 들어설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가 에어컨 덕분이라고 하니 인류의 활동반경을 넓혔다는 말이 빈말이 아닌 셈. 비슷한 예로, 에어컨이 없었다면 [[리야드]] 같이 사막 한복판에 위치한 도시가 대도시로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캐리어는 단순히 더운 여름만 구원한게 아니라 인류의 건축 기술, 교통 물류, IT 인프라, 농업, 축산업, 수산업, 의학계에 지대한 공헌을 끼쳤음은 물론이고 '''적도 반경까지''' 인류 문명의 활동반경을 넓히고 대도시를 건설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위인이라고 볼 수 있다. [[분류:1876년 출생]] [[분류:1950년 사망]] [[분류:미국의 발명가]] [[분류:미국의 공학자]] [[분류:미국의 남성 기업인]] [[분류:코넬 대학교 출신]] [[분류:이리 군(뉴욕) 출신 인물]]보낼 RAW[include(틀:타임지 선정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건설자들 & 거인들))] [include(틀:라이프지 선정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인)] ||<-2> '''{{{+1 윌리스 하빌랜드 캐리어}}}[br]Willis Haviland Carrier''' || ||<-2> {{{#!wiki style="margin:-6px -10px" [[파일:Willis_Carrier_1915.jpg|width=100%]]}}} || ||<|2> '''출생''' ||[[1876년]] [[11월 26일]]|| ||[[미국]] [[뉴욕 주]] 앵골라 || ||<|2> '''사망''' ||[[1950년]] [[10월 7일]] (향년 73세)|| ||[[미국]] [[뉴욕 주]] [[뉴욕 시]]||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미국)] || || '''학력''' ||[[코넬 대학교]] {{{-2 ([[기계공학]] / [[학사]])}}}|| || '''직업''' ||[[발명가]], [[사업가]]|| || '''업적''' ||최초의 전기식 [[에어컨]] 발명|| [목차] [clearfix] == 개요 == [[에어컨]]의 기초가 되는 공기 조절 장치의 [[발명가]]이자 본인의 이름을 딴 회사인 [[캐리어(기업)|캐리어]] 사의 창업주이다. == 생애 == 1876년 11월 26일, [[미국]] [[뉴욕주]] 앵골라에서 태어나 1901년 [[코넬 대학교]]에서 기계공학 학사과정을 졸업하였으며 Buffalo Forge Co.라는 회사에 입사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회사의 실험개발팀장이 되었다. 1902년, 캐리어 박사가 인쇄물의 형태를 변형시키는 습도와 열기를 제거하고자 연구하던 중, 세계 최초로 에어컨의 원리를 발명, 1906년에는 ‘공기 조절 장치(The Apparatus for Treating Air)’로 특허를 획득하며, 공조 업계에서 인정받기 시작, ‘난방’을 위한 장치 개발에도 새로운 도전을 하기 시작하였으며, 1907년에는 캐리어 박사의 시스템을 최초로 일본 요코하마의 비단 공장으로 수출하였으며, 1915년에는 6명의 친구들과 32,600달러를 들여 캐리어 공학 회사(Carrier Engineering Company)를 설립하였는데 이는 현재 우리가 아는 [[캐리어(기업)|캐리어]]의 모체가 되었다. 1922년에는 세계 최초로 [[뉴저지주]] [[뉴어크]]에서 터보 냉동기를 발명, 소개했다. 터보 냉동기는 넓은 공간의 공기를 효율적으로 조절하는 첫 번째 실용적인 제품이었으며, 1924년에는 디트로이트 허드슨 백화점에 터보 냉동기를 설치하여 냉방 분야에 데뷔하였으며, 백화점 세일에 몰려든 고객들이 쇼핑을 쾌적하게 즐기게 됨에 따라 캐리어의 연구는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다. 이듬해인 1925년에는 각 극장에 에어컨이 설치됨으로써 여름철 극장 산업의 붐이 일고 에어컨 시스템이 매력적인 장치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1928년에는 [[세계 대공황]]으로 인해 모든 산업이 침체에 빠져 에어컨 산업에 있어서도 좌절을 맛보던 시기가 있었지만, 지속적인 연구 개발로 20년대 말부터 소형 에어컨이 출시되기 시작했다. 1939년에는 높은 건물들을 위한 에어컨 시스템을 발명하고, 세계 박람회에 캐리어의 공조 시스템이 전시되는 등 활발한 공기 조화 산업의 미래를 제시하였다. 1950년 캐리어 박사는 73세의 나이로 뉴욕 주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출처: 캐리어에어컨 공식 홈페이지 [[http://www.carrier.co.kr/about/story/history.asp|캐리어 역사란]] == 업적 == 한국의 네티즌들 사이에선 '''인류의 진정한 구원자'''라는 진반농반의 찬사를 들으며 커뮤니티에 여름만 되면 항상 찬양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이런 한국의 찬양여론을 캐리어 코리아에서도 잘 알고 있어서 자사 홍보에도 잘 써먹고 있다.[[https://m.blog.naver.com/autechgroup/221539932351|#]]] 물론 한국 뿐 아니라 다른나라들도 마찬가지다. '더위'를 물리쳐준 에어컨의 발명가라는 사실이 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인데, 캐리어의 업적은 에어컨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는 공기 조화 장치, 즉 공조장치를 발명한 것인데 이 시스템은 더위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인간의 생활과 세계의 역사를 그야말로 획기적으로, 영원히 바꿔버린 발명품'''이다. '공조 장치'가 가져온 혁명적인 변화는 다음과 같다. * 공기 조화 장치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밀집한 공간에도 공기화 장치를 통해 실내 온도와 대기의 질을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대형 건물과 시설들이 생겨났다. [[마천루]], [[쇼핑몰]], [[멀티플렉스]], 각종 복합 시설 등이 생겨날 수 있게된 것. 위 생애 문단에서 볼 수 있듯이 캐리어가 공조 장치를 발명한 이후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한 곳이 바로 극장이었다. 에어컨이 없었다면 한여름 찌는듯한 실내 열기를 몇 시간씩 견디면서 영화를 볼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공조 장치가 없으면 '환기'를 시켜야 하므로 개폐가 가능한 창문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그나마도 효율이 장치에 비해 좋은건 아니다. 따라서 대형 건축물을 설계하는데 있어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자리잡았다. * 쾌적한 지하철, 여객기, 철도 환경을 조성하면서 인류의 교통 물류 인프라에 크나큰 기여를 했다. 당연하겠지만 공조 장치가 없다면 다수의 승객이 탑승하는 여객기는 비행 자체가 불가능하다. 상공의 위험한 대기 환경을 생각하면 개폐가 가능한 창문을 단다는건 어불성설. 즉 공조 장치가 발명되면서 '항공여객'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제시될 수 있었던 것이다. * 더위에 취약한 것은 사람만이 아니라 전자기기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수많은 서버들이 모여 있는 [[데이터 센터]]는 에어컨 덕분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에어컨이 없었다면 거대 IT기업이 등장할 수 없었다. 지금도 구글 데이터 센터에는 초당 수십 메가의 유튜브 동영상 데이터가 축적되고 있고 전세계의 수많은 디지털 데이터들이 데이터 센터에 저장되어있고 수억개가 넘는 서버들이 열심히 돌아가고 있다. 그 막대한 데이터를 보관하기 위해 돌아가는 전자장치가 내뿜는 열을 '실내'에서 컨트롤할 수 있는 장치가 바로 공조 장치다. 다시 말해 공조 장치가 없다면 그냥 IT혁명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거나 일어나더라도 매우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갔을 것이다. 실내에 설치할 수 있는 서버의 숫자가 크게 제약되므로 비용이 크게 올랐을 것이기 때문. * 공조 장치는 인류의 냉장, 냉동 기술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켜 식품 및 약품을 그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 보관할 수 있게 되었으며 냉장/냉동 컨테이너가 제작되어 전 세계로 식품이 신선한 상태로 수출될 수 있었다. 이는 '''전 세계 식문화의 변화'''를 이끌어 냈다. 간단히 말해서, 언제 어디서나 신선한 육류와 과일, 채소, 어패류, 곡물 등을 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바다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내륙지역에서 생선 요리를 먹거나, 한겨울에 여름 과일을 먹는 것, 대도시에서 고기를 사먹는 것, 멀리 떨어진 지구 반대편에서 전세계에서 생산되어온 특산품을 먹는 것 등은 단순히 농업기술의 발달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이 바로 공조 장치다. 채소와 육류, 과일 등을 운반하는 대형 선박이나 철도, 트럭 등에 냉장 장치가 없다고 생각해보자. * 의학계에도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냉장과 냉동 기술은 '''백신 및 치료제, 기증 장기 저장 기술'''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공조 장치가 없었다면 바이러스나 암을 비롯한 질병과의 싸움, 그리고 '''현재진행중인 [[코로나19]]와의 전쟁도 불가능하거나 엄청나게 힘들었을 것이다'''. 일례로, [[코미나티주|화이자에서 개발한 백신]]의 경우 보관하려면 '''영하 70도'''의 온도가 필요하다. 공조 장치로 인한 냉동기술의 발달이 없었으면 우리는 백신 연구소를 남극에 세우고 백신 접종을 위해 남극까지 와야 하는 대참사가 벌어졌을 것이다. * 한술 더 떠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는 에어컨이 없었다면 [[싱가포르]]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 싱가포르는 상당히 덥고 습하고 비가 주구장창 내리는 [[열대우림기후]]라[* 실제로 싱가포르는 매우 덥고 습할뿐 아니라 설상가상으로 하루에도 두세 번씩 간헐적으로 [[스콜]]이 내리는 날이 드물지 않다. 이런 식인데 냉방 및 제습기능을 수행하는 공조장치가 없었다면 싱가포르가 세계적인 금융 허브이자 오피스 밀집 지구가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선진국으로 발전하기 불리한 기후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공조 장치 덕분에 더위를 극복하고 손꼽히는 대도시를 건설할 수 있었다. 열대 지방에 대도시가 들어설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가 에어컨 덕분이라고 하니 인류의 활동반경을 넓혔다는 말이 빈말이 아닌 셈. 비슷한 예로, 에어컨이 없었다면 [[리야드]] 같이 사막 한복판에 위치한 도시가 대도시로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캐리어는 단순히 더운 여름만 구원한게 아니라 인류의 건축 기술, 교통 물류, IT 인프라, 농업, 축산업, 수산업, 의학계에 지대한 공헌을 끼쳤음은 물론이고 '''적도 반경까지''' 인류 문명의 활동반경을 넓히고 대도시를 건설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위인이라고 볼 수 있다. [[분류:1876년 출생]] [[분류:1950년 사망]] [[분류:미국의 발명가]] [[분류:미국의 공학자]] [[분류:미국의 남성 기업인]] [[분류:코넬 대학교 출신]] [[분류:이리 군(뉴욕) 출신 인물]] [include(틀:포크됨, title=윌리스 하빌랜드 캐리어, version=94)]더위키에 나무위키판으로 포크됨